‘형제국’ 호주-뉴질랜드 돌연 ‘으르렁’
뉴질랜드 의원, 정부에 호주 부총리 국적 질의
이중국적자 의원 자격 부정하는 호주로 불똥
부총리 등 정치인 5명 사퇴 및 조사받게 돼
호주 “뉴질랜드 야당이 호주 정부 약화 시도”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뉴질랜드는 함께 영연방 소속일 뿐 아니라 역사·지리·혈통·언어·문화 등 다방면에서 누구보다 가까운 ‘형제국’이다. 그런 두 나라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항복한 경사스러운 날에 외교 마찰에 빠졌다.
줄리 비숍 오스트레일리아 외무장관이 15일 뉴질랜드 노동당을 향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를 약화시키려고 한다”는 비난을 퍼부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이런 행위는 매우 비윤리적이며, 더 중요한 점은 양국 정부의 관계를 위험에 빠트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행위”는 뉴질랜드 야당인 노동당 의원이 자국 정부에 바너비 조이스 오스트레일리아 부총리의 이중국적 문제를 질의해 그의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진 것을 의미한다. 뉴질랜드 정부는 자국 출신 아버지를 둔 조이스 부총리가 당연히 뉴질랜드 시민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전날 밝혔다.
지난달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정치권은 이중국적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헌법이 이중국적자의 의원 자격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이중국적 보유 사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이스 부총리의 합류로 모두 5명의 각료나 의원이 자리를 잃거나 자격 심사를 받게 됐다. 여기에는 녹색당 부대표로 생후 2개월 된 딸에게 본회의장에서 젖을 물려 큰 관심을 받은 ‘스타’ 상원의원 러리사 워터스도 포함됐다.
법원에 자격 심사를 의뢰한 조이스 부총리 문제는 정권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 큰 문제다. 부총리라는 자리도 그렇지만, 맬컴 턴불 총리의 자유당-국민당 연립정부는 하원에서 불과 1석 많은 다수당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정치인들의 무덤이 된 이중국적 문제는 따지고 보면 억울한 경우가 다수다. 조이스 부총리는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인 1947년에 아버지가 뉴질랜드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다며, 이중국적 문제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워터스 전 의원도 부모가 캐나다에서 잠시 일할 때 태어나 생후 11개월 때 귀국했을 뿐이라며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탈리아 시민권을 신청한 사실이 드러나 자리를 내놓은 장관도 있다.
비숍 장관의 발언은 뉴질랜드 쪽이 이런 혼란상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이다. 그는 이런 식이라면 뉴질랜드 노동당이 다음달 23일 총선에서 집권해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와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또 역시 야당인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의 의원이 부총리의 이중국적 문제를 제기하라고 뉴질랜드 노동당 의원에게 부탁하는 “반역적” 행위를 했다고 비난했다.
뉴질랜드 노동당은 내정 간섭 시비에 휘말린 것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자국 주재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대표를 만나 비숍 장관의 발언에 항의했다. 조이스 부총리가 뉴질랜드 시민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확인해준 피터 던 뉴질랜드 내무장관은 비숍 장관의 발언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