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은퇴 선언한 빌 잉글리시 국민당 대표
빌 잉글리시 국민당 대표(56)가 13일 대표직과 국회의원직을 차례로 내려놓고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이다.
지난 1990년 29세 때 국회에 진출해 10선의 관록을 쌓은 그는 국민당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지만 지도자로서의 운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존 키 총리 정부에서 2인자 노릇을 오랫동안 한 그가 지난 2016년 당권을 넘겨 받으며 자신의 시대를 여는 듯했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노동당의 비밀 병기 재신더 아던에게 발목이 잡히며 정치 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유능한 지도자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남섬 농촌 출신인 그는 오랫동안 국가 예산을 주무르는 나라 살림꾼으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정계에 뛰어들자마자 주목을 받은 그는 젊은 나이에 보건, 교육, 규제개혁, 세무, 재무 등 여러 부처의 장관을 두루 거쳤다.
신세대 주자로 입지를 굳힌 그는 2001년에는 패기만만한 40세 나이로 국민당 당권을 잡으면서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여는 듯했다. 하지만 2002년 총선에서 헬렌 클라크 전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에 최악의 참패를 당하면서 부진의 늪으로 빠져든다.
추락하는 지지도를 끌어안고 안간힘을 쓰던 그는 2003년에는 급기야 중앙은행 총재 출신 정치 신인 돈 브래시에게 당권마저 넘겨주고 만다. 정치인으로서 또 한 번 쓴맛을 본 셈이다.
와신상담하던 그에게 전기가 찾아온 건 2008년이다. 브래시 대표 후임으로 당권을 잡은 키 전 총리가 총선에서 국민당을 승리로 이끌며 예산 등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다시 일어선 것이다.
국민당 정부 2인자로 나라 살림을 주무르게 된 그는 키 전 총리와 환상적인 호흡으로 세계 금융위기와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등 어려운 문제들을 능숙하게 처리함으로써 경제 사령탑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국민당 정부에 대한 지지 기반을 다지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이다.
오랫동안 지속돼온 재정 적자를 흑자 기조로 돌려놓은 것도 그가 이룬 업적 중 하나다. 한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재무장관 중 최고라는 찬사까지 들었을 만큼 국내외에서 모두 인정을 받았다.
키 전 총리 그늘에 가려 있던 그는 지난 2016년 말 키 전 총리가 정계은퇴를 발표하면서 드디어 그의 시대가 열리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의석수에서 노동당에 앞서고도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권 재창출의 기회를 오히려 노동당에 넘겨줘버리고 만다.
총선 후 벌어진 연정 협상에서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제일당 대표를 끌어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2020년 총선 때까지 다시 한 번 와신상담을 기약했으나 결국 패장에게 기회는 두 번 다시 주어지기 어렵다는 당내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신변정리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정력적이고 솔직하고 소신이 뚜렷하지만 정치인답지 않게 말 수가 적고 대중들을 흥분시키는 능력이 약하다는 평도 따라다닌다. 인간적으로 보면 보수적이고 가정적이고 고지식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낙태, 안락사, 동성결혼, 매춘합법화 법안 등이 국회에 상정됐을 때 모두 반대표를 던졌으나 동성 결혼에 대해서는 나중에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의사인 부인과의 사이에 6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그 자신은 12남매 중 11번째다.
27년의 정치 인생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선거에 이기고도 정권을 잡지 못한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는 아마 가장 아픈 상처로 남아 있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