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용사의 ‘눈물의 아리랑’
무지개청소년오케스트라 초청 공연 소식 듣고 2시간 달려와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아리랑’을 듣는 노병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포연이 짙게 깔리던 전장이 그려졌다. 벌써 68년 전의 일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자유’를 사수했다.
지난 15일, 뉴질랜드 북섬의 로터루아. 오클랜드 남동쪽 약 200km 지점에 떨어진 이곳은 온천이 많아 현지인에게는 관광·휴양지로 사랑받는 도시다. 무지개청소년오케스트라(단장 박래구)는 이곳에서 초청 공연을 열었다. 앞서 2일부터 시작해 퀸즈타운 등의 주요 도시를 거쳐 피날레를 장식할 것이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500여명의 관객 앞에서 1시간30분 동안 천상의 화음을 선사했다.
객석 앞자리에 한 노인이 눈을 지긋하게 감은 채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큰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그는 6.25사변 당시 21살의 나이로 전쟁에 참여했던 참전용사. 한국에서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들을 만나기 위해 89세의 노구를 이끌고 2시간 거리를 단숨에 달려왔다.
이제는 지팡이를 짚어야 거동할 수 있을 만큼 불편한 몸이지만, 자신이 젊음을 바쳐 싸웠던 한국의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어 기뻤다. 폭풍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연주를 감상한 그는 연주회를 모두 마친 후,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꼬옥 껴안아 주었다. 단원들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값지고 고귀한 만남이었다.
아쉬운 작별을 이야기하려던 순간, 노인이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헤어지기 전 한국민요 아리랑을 꼭 한 번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단원들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즉석에서 아리랑을 연주했다. 오직 이 한 명의 참전용사를 위한 콘서트였다. 아리랑이 흐르는 동안 노인은 두 눈을 감은 채 당시를 회상했다. 그의 얼굴에 감격의 눈물이 가시고,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박래구 단장은 “참전용사 할아버지뿐 아니라 단원, 지켜보던 현지인 관객까지 모두 눈물바다가 되는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연에 우리 모두가 먹먹해졌다. 음악으로 그분의 마음에 감사와 위로를 전해드렸다. 평화와 가치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였다”고 전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8일 만에 해군 프리깃함을 한국에 보내 유엔군과 함께 한국영해를 순찰케 했다. 이후에는 병사를 모집해 ‘케이포스’라 불리는 지상군을 파병했다. 유엔 헌장의 숭고한 원리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한 케이포스와 해군 프리깃 함정요원은 5144명에 달한다. 이중 41명이 전사했고, 112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편, 1992년 창단한 무지개청소년오케스트라는 지금까지 35회의 정기공연을 했다. 또 매 2년마다 해외연주회를 펼치고 있다. 그동안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호주 등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선물하며 세계 속에 대한민국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