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 질병 등재에 뉴질랜드 테러범이 거론된 이유
질문: 당신에게 극단주의적 성향과 과격함을 가르쳐준 것은 비디오게임과 영화, 문학, 음악인가
답: 그렇다. ‘(전체연령가의 비디오게임인) 스파이로 더 드래곤’이 내게 민족주의를 가르쳤다. 게임 포트나이트는 나를 킬러로 훈련시켰다…그럴 리가 있나(No).
지난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알 누르 이슬람 사원에서는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40여명이 사망했다. 테러범은 총격을 가하고 도주하는 17분가량을 자신의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으로 생중계했다.
테러범의 영상을 본 뒤 인터넷에서는 “영상의 구도가 GTA 게임과 유사해서 더 무섭다”는 등 게임과 연결한 글들이 올라왔다. GTA(Grand Theft Auto)는 1997년 출시된 게임으로 주인공이 범죄조직의 명령을 받아 무고한 시민들이 사는 도시에서 난장을 피운다는 설정으로 세계적인 히트작이 됐다.
이후 언론은 테러범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원인으로 게임중독을 지목했다. 결정적 역할을 한 건 테러범이 총기 난사를 벌이기 전 공개한 ‘선언문’이었다. 자문자답 형식으로 적힌 선언문에서 그는 ‘게임이나 영화’가 자신의 폭력성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언론 보도를 예견한 듯 “아니다”라고 부정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게임 중독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 돼 버렸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의 질병코드 등록을 확정한 뒤 뉴질랜드 총격사고가 회자되고 있다. WHO는 ‘게임장애’를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에 등재하기로 했다. ICD-11 발효 시점은 2022년 1월이다. ICD는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 근거가 되고 있다. 이번 안건의 통과로 각국은 2022년부터 WHO의 권고사항에 따라 새 질병코드 정책을 도입해 시행하게 된다.
뉴질랜드 총격사고 얘기는 WHO가 게임은 폭력 등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우울증 등 신체적 위해를 입힌다고 규정한 것에 대해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면서 나왔다.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와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개최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김성회 유튜브 크리에이터(G식백과)는 뉴질랜드 총격테러범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총격테러범은 자신이 게임 때문에 이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언론이 보도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선언문 형식의 글에서 ‘엔(N), 오(O)’라고 했다”면서 “그러나 실제 사회와 언론은 게임중독이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들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축구는 왜 거론을 안 하느냐”면서 “유럽에서는 훌리건들이 난동을 부리고 남미에서는 자책골을 넣은 선수를 살해한다. 과거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축구 때문에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최승우 정책국장도 “게임 대신 “자전거나 등산 등 다른 어떤 단어를 넣어도 이용장애 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영순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게임과몰입힐링센터 팀장은 현장에서 상담한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 원인은 게임 자체가 아닌 환경의 문제라고 거들었다.
전 팀장은 “게임 중독이라며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게임 때문에 중독된 케이스는 드물었다”며 “게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모든 문제를 ‘게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게임 때문이라고 하는데 원인 중 하나일 뿐”이라며 “인터넷 중독이나 스마트폰 중독 증세를 보이는 청소년들은 가족 내에서 친밀감이 낮거나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다른 쪽으로 몰입했다고 답하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