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사면특권
◆ 이관옥 변호사의 법률 컬럼 제 32회
“국법보다 지엄(至嚴)한 전하의 왕명일세” 이는 십 수 년전 전국민의 절반이상을 텔레비젼 앞으로 모이게 했던 드라마 ‘허준’에서 나왔던 대사입니다. 허준은 과거에 저지른 밀무역과 반상의 법도를 어기고 양반의 규수와 혼인한 죄가 있다하여 의금부에 하옥되었으며 국법에 따라 관직이 삭탈되고 귀양을 가도록 결정되었지만 의관으로 가난한 병자들을 치유하고 공빈마마와 왕자들을 성심껏 돌본 공을 인정받아 국법으로 허준의 죄를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는 많은 관료대신들의 상소에도 불구하고 결국 선조임금은 대권으로 허준이 과거에 행했던 모든 죄를 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의 임금이 형사법을 위반한 죄인을 국법에 따라 형이 결정되었더라도 그가 세운 공로를 인정하여 왕명으로 죄를 사면해 주었던 것처럼 뉴질랜드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현존하는데 이를 ‘왕실사면특권’ 이라 하며 영어로는 Royal Prerogative of Mercy라 합니다.
왕실사면특권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로 부터 받은 왕실칙서(The Letters Patent 1983)에 따라 뉴질랜드 총독(현재 총독은 2016년 9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Dame Patricia Lee Reddy)은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상징적인 국모(國母)의 역할을 하게됩니다. 본 칼럼과 관련된 권한은 다름 아닌 법무부장관의 조언을 받아 결정을 내리는 왕실사면특권입니다. 총독은 형집행과 형량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제기하는 재소자들에 대한 사면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어 확정된 형기(刑期)를 종결하여 조기석방할 수 있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종결된 형사사건에 대한 심의를 재청할 수 있으나 범죄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에 중대한 실수가 있음이 인정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증인이 법정에서 했던 중대한 내용을 번복하거나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는 중대한 내용을 담은 새로운 증거나 증인이 나타난 경우 등 입니다. 본인의 사건이 정당하게 처리되지 못했다 여기는 모든 이가 신청을 할 수 있지만 법이 정한 법원을 통해 심의를 받거나 결정에 불복하여 상고를 하고 난 후에 신청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러한 왕실사면특권은 범죄행위를 다루는 형사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총독이 가진 고유권한으로 억울하게 수감생활을 하고있는 선량한 시민을 구제한다는 관점에서 볼때 뉴질랜드 형사제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할 수 있습니다.
신청인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신청서를 다운로드 받아 성실히 작성한 후 총독에게 제출하게 됩니다. 사건에 대한 상세한 경위와 내용을 그리고 법원(상고법원 포함)에 냈던 사실증명서 등을 모두 첨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사면된 예
1979년 12월 17일 뉴질랜드 총독은 살인죄로 7년 동안 수감생활을 해오던 장기복역수 아더 알란 토마스를 완전사면토록 명령을 내려 재판결과 부여된 형기를 마치지 않고 교도소에서 나올 수 있도록 특별조치 하였습니다. 토마스씨는 두 명을 살해한 혐으로 기소되어 복역중이었습니다. 살인죄가 인정되어 형사법에 따라 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증거(beyond reasonable doubt)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이를 소홀히 처리하여 결국 선량한 한 시민이 살인죄를 뒤집어 쓰고 7년이나 복역해야 했고 결국 총독의 특별사면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형사법(Crimes Act 1961) 제407조는 여왕 또는 총독에 의해 완전사면을 받아 석방이 되면 원죄를 짓지 않은 것으로 되며 다시는 같은 혐의로 재판에 임하지 않게 됩니다. 관련내용은 Re Royal Commission on Thomas Case [1980] 1 NZLR 252 (CA)를 참조하세요.
(다음 호에 계속 됩니다)
* 본 칼럼은 생활법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필자의 사적인 견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각 개인에 대한 법률조언이 아니므로 맞춤형 법률조언은 가까운 전문가를 찾아 상담받으셔야 합니다. 이 글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이관옥(변호사)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