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회수 (1) ■ 이완상 변호사의 법률 컬럼 제 63회
계약이나 금전거래에 있어서 바탕에 깔려 있는 전제는 아마도 상대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할 것이고 빌린 돈도 제때 갚을 것이라는 믿음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기대했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게 된다.
A씨는 B씨와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B씨의 말만 믿고 돈을 빌려줬는데 B씨가 몇년이 지나도록 돈을 갚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으로 받아낼 수 있을까? B씨가 이제와서 자기는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발뺌까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면 A씨는 과연 B씨에게서 돈을 받아낼 수 있을까?
이번 회부터는 채권의 회수 또는 채무의 변제에 대해 다뤄 보도록 하겠다. 일단 글의 전제로서, 양 당사자가 서명한 문서 (또는 서류)가 있다면 일은 조금 쉬워질 것이다. 그리고 채무자가 채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일은 좀더 쉬워질 것이다. 또한 양 당사자 간에 채무액에 대한 다툼이 없다면 좀더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하나라도 그렇지 않다면 일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게 된다.
(1) 서면의 존재 여부
계약이나 금전거래는 반드시 서면 (written)으로 하고, 거기에 증인 (witness)의 서명까지 받아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계약서는 최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하여 작성해 두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채권.채무 관계의 존재 여부 및 채권.채무액에 대한 다툼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공사계약인 경우 작업의 구체적인 내역, 총 지급액, 단계별 공사일정, 공사대금 지급방법 및 시기, 불이행에 대한 penalty, 하자보수 범위 및 보증기한, 분쟁 발생시 해결방법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고, 금전거래의 경우도 채무액, 이자율, 상환시기, 상환방법, 담보의 제공여부, 불이행에 대한 penalty (연체이자율, 담보의 처분 등), 분쟁 발생시 해결방법 등이 포함되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서면계약이 존재하지 않고 순전히 구두로만 이루어졌다고 해서 아예 계약 자체가 없다거나 채권회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구두로 한 계약도 반드시 이행해야 함이 마땅하고, 거기에 증인이 있거나 계약의 일부이행 (예: 공사의 일부진행, 대금의 일부지급, 부채의 일부상환 등)이 이루어졌다면 간접적으로 채무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메일이나 문자로 주고받은 것이 있다면 또한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엔 여전히 객관적이고 신뢰성있는 증인의 확보문제, 진술의 증거력 문제, 계약의 세부내용에 대한 다툼 등과 관련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 부분은 주장하는 쪽 (주로 채권자)이 최대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2) 시간의 경과 (시효)
채권.채무 관계가 6년을 경과 했다면 원칙적으로 채권 회수가 불가능하고,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된다. 시효에 대해서는 이전 컬럼에서 자세히 설명드린 바 있으므로 여기서 재차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다만 예외적으로 다음의 경우엔 6년이 경과했어도 채권 회수를 위한 소를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즉, (i) 채무자 또는 제3자로부터 직전 12개월 내에 채무의 일부를 상환받은 경우, (ii) 채무자가 서면으로 채무의 존재를 인정한 경우, (iii) 법원으로부터 이미 채무의 존재 확인 및 변제 명령 (Order for Payment)을 받은 경우 등이다. 또한 법원은 재량으로, 위의 사유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신청인의 상황이 아주 특별한 경우 소 제기를 허가할 수도 있다.
(3) 사설기관 (Debt Collection Agency)의 이용
채권자는 선택적으로 사설기관을 이용하여 채권을 회수할 수도 있다. 뉴질랜드에서 합법적으로 채권추심 업무를 대행해 주는 사설기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들에게 의뢰할 경우 통상적으로 계약과 동시에 착수금 (initial fee)을 지불해야 하고, 추가로 채권액에 비례하는 추가수수료 (commission)를 내게 된다.
사설기관을 이용하는 것이 때로는 신속하고 강력한 해결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채권액이 크지 않은 경우엔 실익이 별로 없으므로, 아래에서 설명할 Disputes Tribunal (이하 ‘소액심판소’)을 이용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또한 본 컬럼에서는 사적인 해결방법보다는, 소액심판소 또는 법원을 통한 공적인 해결방법에 촛점을 맞추고자 한다.
(4) 채무의 존재 여부 및 채무액 (소액심판)
상대가 채무의 존재를 인정하고, 채무액에 대한 다툼도 없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채무액의 크기에 따라 가야할 곳이 달라지게 된다. 잘 알고 계시듯, 뉴질랜드에는 소액심판소 (Disputes Tribunal)라는 곳이 있다. 대개는 지방법원 (District Court)에 함께 마련되어 있다. 채무의 존재 여부 및 채무액의 크기에 대한 다툼이 있고, 그 분쟁의 대상이 되는 금액이 $15,000 미만이라면 소액심판소에 해결을 신청할 수 있다. 쌍방이 합의하는 경우엔 $20,000 미만 까지 가능하다. 소액심판소는 양 당사자의 진술과 증거 등을 토대로 채무의 존재 여부, 채무액 등을 결정하여 28일 이내에 변제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소액심판소의 결정에 불복하는 경우엔 지방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다툼의 대상이 되는 금액이 이보다 더 크다면 지방법원 또는 고등법원에 채무 존재 확인 및 변제 명령 (Order for Payment)을 신청해야 한다. $15,000 이상 $350,000 미만이면 지방법원으로, 그 이상이면 고등법원으로 신청해야 한다. 사실상 소송이 시작되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채무자가 회사 (company )이고, 채권액이 $1,000 이상인 경우엔 별도로 고등법원으로 가야 한다 (이를 ‘Statutory Demand’라 부르며, 이 부분은 여기서 따로 설명하지 않기로 하겠다).
만일 채무의 존재 여부 및 채무액에 대한 다툼은 없지만, 단지 채무의 이행 또는 변제를 거부하고 있다면 소액심판소에서 다룰 수 없고, 바로 지방법원에 강제집행 명령 (‘Civil Enforcement’ 절차)을 신청하여 실제로 변제토록 해야 한다. 이 부분은 다음 회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드리도록 하겠다.
*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이완상 변호사에게 있습니다. 필자의 명시적 서면동의 없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및 인용을 금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 고객을 위한 법률조언이 아니므로, 필자와의 정식 수임계약 없이 독자 임의로 내린 법률적 결정에 대하여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