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상 변호사의 법률컬럼 제 37 회
명예훼손 (1)
살다보면 남의 말은 하기 쉬고, 나 자신을 들여다 보기는 어려운 때가 다반사다. ‘말은 곧 인격이다’ 라거나 ‘세치 혀에 화가 있다’라는 표현도 한다. 한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쓸어담지 못하는 법이고, 그 말은 때론 다른 이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기도 한다. 이민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우리 교민사회에서도 그간 몇 차례 명예훼손 소송이 진행된 바 있어서 교민들께도 그리 낯설지 않은 법 개념이 바로 ‘명예훼손 (defamation)’일 것이다.
더구나 최근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 사용을 통한 무책임한 정보의 전파나 주장들은 이들 매개체들이 추구하는 편의성과 정보의 공유라는 가치를 넘어서 특정인의 인격이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여지도 점점 커지고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그러한 수단을 통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도 점점 더 광범위하고 엄한 처벌을 가하는 추세라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따라서 언제, 어떤 내용을, 어떤 의도로, 어떤 방법으로, 누구에게 한 것이 명예훼손을 성립시키는지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는 바, 앞으로 두세 차례에 걸쳐 명예훼손의 개념, 그 성립요건들, 가해자의 defence요건, 구제방법 등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하겠다.
1. 명예훼손의 개념
법적으로 ‘명예훼손’이란 다른 이의 명예나 지위를 낮추거나 폄하시키기 위해 진실이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을 제3자에게 공표하거나 퍼뜨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The publication of a untrue statement to a third party that tends to harm or lower another person’s reputation or standing).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는 행위는 실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예컨대 구두, 서면, 강연, 인쇄물, 간행물, 방송, 인터넷 또는 소셜미디어 게재 등 사실상 그 범위에는 한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뉴스 웹싸이트들을 통해 공표되거나 블로그상에 게재된 내용들에 대해서도 점차 명예훼손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심지어는 (피해 구제에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해외에 근거를 둔 웹싸이트를 통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도 그 운영자 (Internet Service Provider: IPS)들의 법적인 책임을 강조하고 있고, 실제로 호주, 영국, 미국, 유럽연합 등은 Google같은 특정 search engine 운영자들에게 명예훼손적인 내용의 삭제를 요청받았을 때 구체적인 행동에 옮기도록 요구하고 있고, 점차 소기의 성과를 얻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상 이 명예훼손은 법 영역 중에서도 가장 난해하고 불분명한 영역중 하나이기도 하다. 뉴질랜드에도 ‘Defamation Act 1992’ 라는 성문의 준거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많은 부분이 여전히 법원의 판례를 통해 해석되고 판단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명예훼손은 또한 민주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 (freedom of expression)’와 상치되는 법 이익이 존재하고, 때로는 개인의 privacy 침해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법원도 명예훼손 소송에 대하여는 개인의 권리 구제 측면은 물론, 상치되는 여타 법 이익간의 균형 측면을 모두 고려하는 신중한 입장을 취할 때가 많다.
2. 명예훼손의 성립요건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명예훼손에 해당되는가’. 이에 대한 기준은Defamation Act상에 “defamation includes libel and slander” 정도로 아주 간단하게 정의되어 있으므로, 결국 판례를 통해서 정립된 정의를 인용할 수 밖에는 없다.
판례들로부터 명예훼손에 대한 공통분모를 추출해보면, “그 말을 들음으로써 사회 일반적으로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그 얘기의 주인공을 낮춰보게 할 개연성이 충분하다”면 일단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보면 되겠다. 이는 피해 당사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건전한 제3자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의 폐해의 정도를 뜻한다 (objective test).
또한 그간 법원 판례를 통해 성립된 기준 (legal test)을 보면, “그러한 말이나 공표로 인해서, 일반적으로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형성되어 있는 피해자 (얘기의 주인공)에 대한 평판이나 평가가 훼손되고 폄하되었는가”이다. 즉, 그런 말이나 공표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피해자를 이전보다 더 안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거나 피하거나 한다면 이 기준을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내용을 풍자나 암시, 비유, 빈정거림 등의 간접적인 방법 (innuendo)을 써서 표현했더라도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제3자’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뺀 모든 이를 뜻하며, 단 한명에게만 말한 경우에도 성립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의 주인공이 누구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간접적으로 충분히 그 사람임을 인지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 있다. 예컨대 이니셜, 닉네임, 직업 등을 언급하여 그 주인공을 암시하는 경우도 해당된다.
명예훼손은 그 주인공이 속한 커뮤니티의 크기나 구성에 따라 그 폐해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고, 그에 따른 처벌도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우리 한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명예훼손의 영향은 우리보다 큰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경우보다 피해의 심각성이 상대적으로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명예훼손은 또한 종교적 또는 문화적 차원에서 그 폐해의 경중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피해자가 속한 커뮤니티 내에서 명예훼손적인 발언의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도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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