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시내의 노숙자들 이야기, ‘술, 외다리 시인 그리고 카우마투아’
오클랜드시의회(Auckland Council)는 오클랜드 내 노숙자의 총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홈리스 전수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tuff 취재진은 시의회가 노숙자 없는 거리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인 시내 중심부에 나가 사회에서 소외된 노숙자들을 만나봤다.
매일 아침 동이 트기 전, 오클랜드 시내에는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모인다. 이들은 스카이타워(SkyTower)가 생기기도 전인 1990년대부터 노숙 생활을 해왔다. 그중에는 노숙 생활을 하다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도 있다.
취재진이 이른 아침 만난 노숙자 4인조는 플라스틱으로 된 빵 박스 위에 종이상자를 접어 깔고 앉아, 블루투스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그룹 플릿우드 맥(Fleetwood Mac) 노래를 듣고 있었다.
오전 7시가 조금 지나면 누군가 항상 하루 지난 고기 파이 한 봉지를 이들에게 건넨다. 형제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이들에게 나타나면 주먹으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운 좋게 파이 하나를 얻어 간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어쩐지 불안해 보이는 보이는 조셉(Joseph)이라는 노인네가 이들 중 한 명에게 20달러를 준다.
돈을 받은 마크 필립(Mark Phillip)은 입고 있던 후드티 속에서 킹피셔(Kingfisher) 맥주 두 캔을 조심스럽게 꺼내 빵 상자 뒤에 두고는 길 건너 편의점으로 향한다.
“조셉은 불법 침입 죄가 있어서 거기서 술을 살 수가 없어요” 필립이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 중 한 명이 가서 대신 사주고 수수료를 좀 받죠.”
힘든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조셉에게 수수료를 받는 것이 좀 가혹하지 않냐는 질문에 필립은 윙크로 답한다.
“일종의 세금이에요. 구걸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가 여기서 하는 게 다 구걸이에요.”
오전 8시 30분이 되자 4명은 모두 술에 취해 있었다. 취재진이 지난 목요일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와 같은 시간이다. 그때 이들은 제정신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 다음날 아침 7시 전에 오라고 했다.
이들은 노숙자처럼 보이고 노숙자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이 중 절반만 실제로 집이 없는 노숙인이다.
필립과 그들 중 원로인 솔 존스톤(Sole Johnstone)은 매일 저녁 돌아갈 집이 있다. 이들은 자신을 ‘부랑자’라 부른다. 결국 직업적인 걸인인 셈이다.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거리 노숙 생활을 해온 이들은 양쪽 세상에 살며 최고의 것을 누리고 있다.
과거 노숙 생활을 한 적 있는 53세 마크 필립은 자녀 중에 노숙자가 있다 ©STUFF
술
53세인 필립은 수십 년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생긴 통풍 때문에 질병 보조금을 받고 있다.
“그래요, 난 12살 때부터 술을 마셨어요. 9살 때 집에서 쫓겨났죠.”
필립은 가족으로부터 쫓겨난 후 처음 노숙 생활을 경험했고, 1983년 이후로는 대부분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집과 수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들이 활동하기도 전인 이른 새벽부터 그가 거리에 나와 구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필립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10점 만점 중 행복지수가 몇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너무나도 쉽게 “11점”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집에 꼭 있어야 하나요? 난 이런 생활이 좋아요. 형제들과 같이 있는 것이 좋고, 구걸하는 것도 좋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요.”
“여기 앉아있으면 술도 마시고 $100를 벌 수 있는데 뭐하러 주에 40시간씩 일하면서 노예처럼 생활합니까?”
운수가 좋은 날이면 필립은 구걸로 $100까지 벌 수 있다. 어떤 날에는 $200를 횡재하기도 한다. 그가 받는 보조금과 파트너의 월급을 제외한 액수다.
필립은 맥주를 사 먹는데 하루 $100 정도 지출한다. 가끔은 위스키도 사 먹는다.
“오후 4시가 되면 꼭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이를 닦고 파트너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는 길거리 노숙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 형제들과 동지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필립은 이러한 생활 방식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13명의 자녀와 7명의 손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묻는 질문에 곧 침울해졌다.
그는 아이들이 어린 시절 자신의 음주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이제 와서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죠. 하지만 아빠가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면 됩니다.” 필립은 말한다.
필립의 자녀 중에도 현재 노숙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는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필립은 빅토리아 스트리트(Victoria St) 노숙자 무리 가운데로 자녀들을 불러들일 생각은 없지만 종종 그의 아파트에 하루 이틀 머물게 한다.
“아이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거니? 보조금 받고 살거니? 무언가 바람직한 일을 하면서 살거니?’ 물으면 아이들은 ‘아니요, 그냥 쉬면서 살고 싶어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거리로 나오는 거죠. 저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그게 제 철학이에요.”
갑자기 경찰차가 지나가자 필립은 마시고 있던 맥주를 재빨리 옷 안으로 숨긴다. 가뜩이나 나온 배가 더 불룩해졌다. 그는 경찰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취재진에게도 윙크를 해 보인다.
“우리가 술 마시는 걸 보지 못한 이상 경찰은 우리 친구예요.” 그는 말한다.
42세 케니 달은 젊은 친구들이 노숙생활 하는 것을 막아 나서고 있다 ©STUFF
외다리 시인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42세 케니 달(Kenny Dahl)은 18살 때부터 노숙 생활을 반복해왔다. 현재 그는 “머리만 붙일 수 있으면 모든 곳이 집”이라고 말한다. 그는 필립보다 말 수가 적은 편으로, 뭔가 불안해 보이면서도 꺼억꺼억 웃는 웃음소리가 특징이다.
케니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4, 5년 전쯤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모험 삼아 타카푸나 (Takapuna)의 3미터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다 뼈가 부서지는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뚝, 탁탁, 펑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렇게 됐죠.” 병원을 싫어한 케니는 다리 고치는 수술을 받기 전 절뚝거리며 병원을 빠져나갔다가 결국 감염이 되어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쪽 다리로만 사는 것은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 목발에 의지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데다, 자신보다 훨씬 안 좋은 상태의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케니 달은 노숙 생활 중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STUFF
취재진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냐고 묻자 그는 시를 들려주겠다고 대답한다. 그는 미국 시인 데일 윔브로(Dale Wimbrow)의 ‘유리 속의 남자 (The Guy in the Glass)’를 낭송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던 로토루아 섬(Rotoroa Island)에서 이 시를 외웠다고 말했다.
케니는 직접 시를 쓰기도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밝은 하루를 선사하기 위해 자신의 시를 낭송해준다. 그럴 때마다 종종 종이컵에 동전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4인조 노숙자들의 친구로 보이는 빨간 재킷을 입은 한 남자가 맥주를 마시면서 끼어들었다. “케니는 어린 친구들을 도와주지요.”
이에 케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노숙 생활은 어린 친구들에게 좋지 않아요.” 그는 젊은 사람들이 노숙을 하지 않도록 막아 나서고 있다. 길거리에서 어린 친구를 만나면 자신의 전화기를 빌려주며 부모님에게 전화하라고 말한다.
“엄마한테 우선 전화해서 무사히 잘 있다고 이야기해야죠.”
다른 이들에게는 노숙을 권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사이좋은 두 형제가 사는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숙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 아직까지 괜찮은 것 같아요.” 케니는 말한다.
62세 솔 존스톤은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나와 구걸을 하고 있다 ©STUFF
카우마투아(KĀUMATUA: 마오리 원로)
64세 솔 존스톤은 16살 때 학대를 당하던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온 뒤 오클랜드 하버브리지(Harbour Bridge) 밑에서 3년 간의 노숙 생활을 했다.
이때 그는 처음으로 공동체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거리에서 생활하면서 노숙자들끼리 서로 돌봐주며 아주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후 군 복무를 마친 그는 또 노숙생활을 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병원 신세를 지면서 10년 전 노숙생활을 접었다. 그 뒤로 존스톤은 오클랜드 시내 아파트에서 생활해왔다. 그는 이 아파트를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유명한 교도소 이름인 ‘엘커트래즈(Alcartraz)’라 부른다.
그는 그때 만약 다시 거리로 나왔다면 건강 쇠약으로 6개월 안에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올해 들어 그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길거리 친구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친구들이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지금 우리와 함께 여기 앉아 있겠죠. 우리 노숙자들은 이런 것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때때로 존스톤은 자신이 아직도 노숙자인 것처럼 말한다. 제대로 된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부끄러운 것처럼 보였다. 그는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거리에 나와 동료들과 함께 구걸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음을 재차 강조했다.
“나는 비 오는 날에도 거리로 나와요. 하루도 거르지 않죠.”
“왜냐하면 내 형제들이 여기 있기 때문이에요. 이 친구들은 따뜻한 집에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나도 그들과 함께 나와 있으려 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5시에 시내에 나와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밤 사이 모두 무사한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아침 7시가 되면 이곳으로 모두 모이죠.”
존스톤은 길거리 형제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매일 새벽 5시에 집에서 시내 거리로 나온다 ©STUFF
존스톤은 노숙을 낭만으로 여기지 않는다. “노숙은 춥고, 위험하고, 사람들의 발에 치이는 삶이에요. 때로는 끔찍한 것이죠. 날씨도 잔인하리 만큼 나쁜 날도 있고…”
“마약 때문에 타락의 길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는 그랬습니다. 저는 약물 중독에 알코올 중독이었고, 그로 인해 빚도 지게 됐죠.”
하지만 그는 아직도 어두운 현실에 직면해 있는 그의 친구들에게 집에서 살라고 권유하지 않는다.
“저는 그들이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시티미션(City Mission) 같이 주거 공간을 마련해 주는 기관을 찾아가는 것도 그들의 선택인 것입니다. 어떻게 살 지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저도 구걸하는 것이 저의 선택이고, 내 컵에 돈을 넣어주는 사람들도 그들이 선택해서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컵을 내미는 것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러한 일은 성서 시대 때부터 있던 일이에요.”
이날 4인조 노숙자 곁을 지나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건강을 물어주고 파이를 건네거나 취재진이 노숙자들을 왜 귀찮게 하냐고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노숙자들이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거리에서 추운 겨울밤을 보내는 것을 불쌍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케니의 목발이 곁에 있던 맥주 캔을 치자, 안에 있던 맥주가 아래로 흘러 필립의 발을 적신다.
“어이, 맥주 아깝게!”라고 케니를 꾸짖던 필립은 행인을 향해 웃어 보인다.
존스톤이 행인들과 길거리 형제들, 그리고 1989년 존 그리샴(John Grisham)의 소설 ‘거리의 변호사(The Street Laywer)’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한다. 거리의 변호사는 노숙자와 약물 중독을 다룬 소설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존스톤이 취재진에게 일러준 말이다.
“우리는 사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우리도 사실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고 감정이 있습니다.”
오클랜드 시내 4인조 노숙자의 술주정이 더 심해질 무렵, 취재진은 그들과 주먹으로 인사를 나눈 후 그 자리를 떴다.
원본 기사: Stu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