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패키지여행 중 교통사고로 정신장애…손해배상 범위는?
[대법] “추가 체류비 · 국내 후송비 · 국제전화비용도 배상하라”
여행객이 해외 패키지여행 중 교통사고를 당해 정신장애를 입었다. 대법원은 국내외 병원에서의 치료비 외에 여행객이 치료과정에서 추가로 지출한 해외 체류비용과 국내로 후송하는 데 든 비용, 국제전화 비용도 여행사가 모두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여행계약상 주의의무 내지 신의칙상 안전배려의무 위반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통상손해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4월 3일 호주 패키지여행 중 교통사고를 당해 정신장애를 입은 여행객 황 모씨가 “48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N여행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8다286550)에서 이같이 판시해 해당 비용에 대한 원심 판결 부분을 취소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황씨와 황씨의 어머니는 N여행사와 ‘호주-뉴질랜드남북섬 10일’ 패키지여행계약을 체결하고 여행비용으로 399만 8000원(1인당 199만 9000원)을 지급한 다음 2016년 3월 9일부터 18일까지 10일간 N여행사 측 직원의 안내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대금에는 N여행사가 여행 종료 후 황씨를 국내로 귀환시키는 데에 필요한 비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황씨와 황씨의 어머니를 포함한 일행 12명을 태운 N여행사 측 25인승 투어버스가, 여행 7일째인 3월 15일 오전 10시 30분쯤 뉴질랜드 남섬 타라스 지역 도로를 주행하던 중 앞서 가던 9인승 승합차를 추월하기 위해 차로를 변경하는 순간 이 승합차도 동시에 우회전 표시등을 켜고 오른쪽으로 들어오면서 투어버스 왼쪽 앞 부분과 승합차의 오른쪽 후사경 부분이 충돌하여 투어버스의 충돌 부분에 흠집이 생기고 승합차의 후사경이 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차량의 운전자는 차량 상태를 확인한 후 보험사고 신고를 하지 않고 파손된 부분을 각자 해결하기로 하고 사고 처리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사고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황씨가 이상한 말과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황씨는 여행일정에 계속 참가하였으나, 사고 당일 오후 일행들이 크라이스트처치 쇼핑센터 방문 일정을 마치고 투어버스에 탑승하여 이동하던 중 갑자기 큰 소리로 차에서 내려야 한다고 말하며 좌석에서 일어나려던 일이 있었고, 다음날에도 여행일정에 참여하였으나, 현지 일정 마지막 날인 3월 17일 투어버스에서 발작을 일으켰고, 이에 귀국을 위해 오클랜드 공항으로 이동하던 중 또다시 발작을 일으켜 앰뷸런스로 인근 병원에서 3월 22일까지 입원치료를 받았다. 황씨는 3월 24일 다시 귀국을 위해 오클랜드 공항으로 갔으나 공항에서 다시 발작을 일으켜 오클랜드 병원으로 이송되어 4월 3일까지 입원치료를 받은 다음 한국의 해외환자이송업체를 통해 한국 의료진의 파견 하에 귀국했다. 당시 국내에 머물고 있던 황씨의 아버지는 이 환자이송업체에 환자 후송비용으로 2700여만원을 지급했다.
귀국해 4월 7일부터 26일까지 병원에서 ‘기타 급성 및 일과성 정신병장애, 급성 스트레스 반응’ 진단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은 황씨가 N여행사를 상대로, 뉴질랜드에서의 치료 · 체류 비용 1600여만원과 한국으로의 환자후송비용 2700여만원, 귀국 이후의 치료비 등을 합한 5400여만원에서 보험회사로부터 지급받은 보험금 600만원을 뺀 48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황씨가 (여행 중 당한) 교통사고로 인하여 정신병장애를 입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황씨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가 머리의 통증을 호소하며 귀국을 요청하였음에도 피고 측 현지가이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기존 여행일정을 그대로 진행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는 여행계약상 주의의무 내지 신의칙상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고, 다만 황씨의 기질적인 요인이 손해의 발생과 확대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N여행사의 책임을 20%로 제한, 황씨가 뉴질랜드와 한국에서 지출한 병원비와 약제비, 뉴질랜드에서 지출한 병원 후송비의 20%인 413만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뉴질랜드에서 추가로 지출한 호텔 숙박비 등 체류비용과 뉴질랜드에서 국내 병원으로 황씨를 이송하기 위하여 지출한, 의사와 응급구조사의 체류비와 왕복 항공권, 장비 및 구급차량 이용료, 부대비용 등 2700여만원, 국제전화비용 42만여원은 “여행계약상의 의무 내지 신의칙상 안전배려의무 위반과 상당인과관계 있는 통상손해라거나 피고가 예견할 수 있었던 특별손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손해배샹의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대법원은 그러나 “여행자가 해외 여행계약에 따라 여행하는 도중 여행업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상해를 입은 경우 그 계약상 여행업자의 여행자에 대한 국내로의 귀환운송의무가 예정되어 있고, 여행자가 입은 상해의 내용과 정도, 치료행위의 필요성과 치료기간은 물론 해외의 의료 기술수준이나 의료제도, 치료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언어적 장애 및 의료비용의 문제 등에 비추어 현지에서 당초 예정한 여행기간 내에 치료를 완료하기 어렵거나, 계속적, 전문적 치료가 요구되어 사회통념상 여행자가 국내로 귀환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인정된다면,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귀환운송비 등 추가적인 비용은 여행업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통상손해의 범위에 포함되고, 이 손해가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라고 하더라도 예견가능성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가 (여행 중 당한) 사고로 인하여 정신적 상해를 입은 이상, 여행계약에 피고의 원고에 대한 귀환운송의무가 이미 포함되어 있었고, 사고 이후 원고가 당초의 여행기간 내에 뉴질랜드 현지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것을 기대하기 어렵거나 이로 인하여 국내로 귀환하여 계속적, 전문적 치료를 받을 필요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원고 측이 지출한 국내 환자 후송비용은 여행업자인 피고의 여행계약상 주의의무 내지 신의칙상 안전배려의무 위반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통상손해라고 볼 수 있고, 나아가 원고가 해외에서의 치료와 국내로의 귀환과정 또는 사고의 처리과정에서 추가로 지출한 체류비와 국제전화요금 등의 비용 또한 그와 같은 통상손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그런데도 이와 달리 원고가 국내 환자 후송비용 및 뉴질랜드 체류비용과 통신비로 지출하였다는 손해액이 과연 이와 같은 통상손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제대로 심리 · 판단하지 않은 채 피고의 여행계약상 주의의무 내지 신의칙상 안전배려의무 위반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통상손해가 아니라거나 피고가 예견할 수 있었던 특별손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손해배상에 있어서의 인과관계와 통상손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황씨가 추가로 지출한 뉴질랜드 체류비용과 국내 후송비, 통신비도 모두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