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포치’ 포문 열자… 필리핀·인도·뉴질랜드 속속 금리인하
[美中 경제전쟁] G2 환율전쟁에 전세계 각자도생
무역 전쟁으로 시작한 미·중 갈등이 환율 전쟁으로 확전하며 장기화할 기미를 보이자, 각국이 경제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면서 각자도생(各自圖生·각자 제 살 길을 찾음) 길로 접어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향해 금리를 더 내려 이 전선에 뛰어들 것을 연일 종용하고 있다. 지난달 3년 만에 금리를 인하한 한국은행도 추가 인하 시기를 저울질 중이다.
◇각국 경쟁적 금리 인하
7일 뉴질랜드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폭(0.5%포인트)은 시장 예상치의 두 배였다. 큰 폭의 금리 인하에 이날 뉴질랜드달러(키위달러) 가치는 2% 가까이 급락했다. ‘동결’이 예상됐던 태국 중앙은행의 인하 결정(0.25%포인트) 역시 시장에선 ‘서프라이즈’로 받아들여졌다. 인도는 이날 인하(0.35%포인트)로 올 들어 4차례, 총 1.1%포인트나 금리를 끌어내렸다.
8일엔 필리핀도 “주요국 무역 갈등으로 세계 경제가 약화됐다”며 인하 대열에 동참했다(0.25%포인트). 올해 4월 이후 G20 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21국 가운데 금리를 내린 곳은 12국으로 절반이 넘는다. 두 차례 이상 내린 곳도 5국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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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일단 각국 중앙은행은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에이드리언 오어 뉴질랜드 중앙은행 총재는 7일 기자회견에서 “미·중 무역 갈등이 투자 결정에 걸림돌”이라면서 “마이너스 금리가 실행 가능한 영역에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모두가 금리 내리면 금리인하 효과 작아
지난달 나란히 금리를 내린 미국과 우리나라 중앙은행도 추가 금리 인하 압력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 시각) 트위터에 “세 중앙은행이 추가로 금리를 인하했다. 우리 문제는 중국이 아니다. 일이 쉽게 풀릴 수 있을 때 무능력한 것은 보고 있기 끔찍한 일이다. 연준은 반드시 금리를 더 많이, 더 빨리 내려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양적 긴축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연준을 압박했다.
보다 못한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이 이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연준 의장이 압력에 직면한 적은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지만, 이처럼 공개적이고 치명적이면서 위협적인 압력은 내 생각에 이번이 처음”이라고 우려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추가 인하는 언제쯤 있을 것인지에 대해 연일 질문받고 있다. 국제 투자은행(IB)들은 대체로 오는 4분기에 한은이 금리를 한 번 더 내리리라 보고 있지만, 노무라와 JP모건 등 일부는 이르면 이달에도 금리를 더 내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기준금리가 이미 1.5%로 역대 최저치(1.25%)보다 0.25%포인트 높은 수준인 데다, 모든 나라가 일제히 금리를 내리면서 우리만 금리 인하 효과를 볼 수 없는, 그래서 실탄만 낭비할 수 있는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中, 무역 분쟁 장기화 대비할 듯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포치(破七)를 용인한 것은 무역 분쟁이 오래갈 것에 대비해 ‘버티기 작전’에 들어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당장 미국과 갈등이 해결될 것 같지 않으니, 위안화 절하로 관세 인상에 따른 중국 수출 기업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면 중국 수출품 가격이 낮아져 교역 경쟁력이 높아진다. 미국 농산물 수입을 중단한 것 역시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기반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외환 전문가들은 미국이 추가 관세 부과를 강행할 경우 중국도 당분간 위안화 평가 절하를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다음 달 1일부터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미국이 예고대로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경우 위안화 환율은 연말까지 7.3위안 수준으로, 25%까지 관세를 높일 경우 7.5위안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중 무역 분쟁 등에 따른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는 국제 원자재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안전 자산인 금·채권 가격이 급등하고, 교역 감소 우려로 국제 유가는 하락하는 것이다.
7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금값은 전날 대비 2.4% 급등해 6년 만에 처음 온스당 1500달러 선을 넘겼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3년 만에 처음 1.6% 아래로 떨어졌다.
또 9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은 4.7% 떨어졌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경제에 대한 우려로 온스당 1507달러인 금값이 반년 내에 16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