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쿼터제 도입해 여성 정치참여 늘려야”
첫 여성 UNDP 총재 헬렌 클라크 前뉴질랜드 총리
남녀 임금격차 37% 달하고
女의원 비중 평균보다 낮아
한국 성평등 아직 낙제점
뉴질랜드, TPP 가입통해
글로벌시장 접근성 높여
한국도 참여여부 결단 필요
사상 첫 유엔개발계획(UNDP) 여성 총재, 뉴질랜드 사상 두 번째 여성 총리이자 여성 첫 노동당수, 장관, 부총리. 모두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가 쌓아 올린 기록이다.
1981년 정계에 진출한 이후 여성 정치사를 바꿔나간 클라크 전 총리는 마지막 공식 직함인 UNDP 총재에서 물러난 뒤 스스로 `프리랜서 행정 감찰관(freelance public advocate)`으로 소개한다. 한때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페미니스트이자 사민주의자였던 오클랜드대 정치학 교수는 30년간 정계와 국가 수반, 유엔 산하기구 수장 등을 거치며 당대 여성 리더를 대표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1999~2008년 뉴질랜드 총리를 역임한 클라크 전 총리는 역대 뉴질랜드 총리 가운데 가장 많이 한국을 찾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한국을 찾아 여성 리더십과 성평등을 한국 대중에게 반복해서 강조했다. 클라크 전 총리는 지난달 연세대에서 열린 `제2회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 참석차 방한했다. 이하는 그와 일문일답. ―뉴질랜드 총리, UNDP 총재 등 여러 리더의 직을 경험했다. 이제 자유로운 `프리랜서`로서 최근 관심 갖는 분야는.
▷지난 30여 년간 뉴질랜드 의회와 행정부, UNDP를 거치며 특정 분야로 파고들기보다 폭넓은 이해관계와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어젠다에 집중했다. 여러 이슈를 연결 지어 해결책을 모색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SDG들 간 연결고리에 집중했다. 예를 들어 16번째 SDG인 `평화롭고 포용적인 사회`는 말 그대로 30년간 독재가 이뤄지며, 거리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부패로 점철된 사회로는 달성할 수 없다. 평화 없이는 지속가능 발전도 없고, 지속가능 발전 없이는 평화도 불가능하다. 주된 관심사는 `평화롭고 포용적인 발전`이다. 한국은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고, 이를 위해 목소리를 낼 사람들도 있다. 여전히 중남미에서 `마약과의 전쟁`은 수천 명을 살인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이슈들은 캐나다, 스웨덴, 포르투갈 같은 서방 국가와는 거리감 있는 주제다. 이는 평화롭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유럽 또한 시리아 난민 문제 같은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지 않은가.
▷레바논과 같은 소국은 전체 인구가 500만명인데 125만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다. 비슷한 소국 요르단도 60만~80만명에 달하는 난민을 수용했다. 이들 국가는 이미 팔레스타인 난민과 이라크 난민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이 두 국가는 망하지 않고 꾸준히 발전을 이어갔다. 터키는 무려 300만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시리아 난민 100만명이 유럽으로 갔을 때 유럽은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리아 주변 국가들의 관용과 포용력을 유럽과 비교하면 한숨이 나온다.
―유엔 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 단원제 국회 혹은 양원제 하원에서 여성 의원 비중은 2010년 19%에서 2018년 23%로 증가했다. 한국의 성 평등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성 평등과 정치적 리더십을 보면 의회에서 여성 의원 비중이 여전히 23%에 불과한 건 꽤 낮은 수치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더 비중이 낮다고 알고 있다. 가장 앞서 있는 뉴질랜드조차도 여성 의원 비중은 40%대다. 나는 뉴질랜드 총리로서, 입헌군주국 공주를 포함해 전 세계 6~8%에 불과한 여성 리더 중 한 명이었다. 처참한 수치다. 여성이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되기 위해 기존 정당들이 정말 크게 변해야 한다. 여성들이 더 많이 정치에 참여해 이 같은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선거제도 변화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는 비례대표 제도를 도입한 이후 여성 의원 비중이 20%대에서 40%대로 상승했다. 빠른 성과를 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여성 의원 할당제(쿼터)다. 단기간에 목표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게 불만인 국가라면 선택할 수 있다.
―여성을 리더 위치에 두는 것만이 반드시 여성 성공 여부의 기준이 될 필요는 없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성 정치 참여는 성 평등 지표 중 중요한 지표다. 여성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더 많이 참여할수록 여성들이 중시하는 부분이 사회적 이슈에 반영될 수 있다. 여성들을 위해 더 개선된 정치적 환경 형성, 보건 증진, 교육 등에 기여할 것이다.
다른 측정 지표도 많다. 그중 하나가 임금격차다. 뉴질랜드에선 과거 남성이 여성보다 20%가량 임금을 더 받았지만 현재는 9.2%까지 남녀 임금격차가 축소됐다. 일부 국가에선 더 큰 차이가 나기도 한다. 한국도 남녀 임금격차가 크다고 들었다(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 기준 36.7%). 더 많은 여성이 의사결정에 참여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
―한국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무엇인가.
▷중요한 건 젊은 세대가 정치에 참여하는 일이다. 기성 세대와 늙은 정치인들은 젊은 세대에게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다. 현재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정치적 의사결정은 기성 세대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위해서도 내려져야 한다. 정치 시스템 역시 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개방돼야 한다. 또 다른 조언은 모든 사회적 안건을 정부에만 맡기지 말라는 것이다. 파리기후변화협약, SDG 등에 정부가 참여할 수 있지만 정부는 그런 목표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때도 있다. 청년과 시민사회, 모든 시민이 책임지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한국은 뉴질랜드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최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논의와 더불어 양국 간 경제 협력 전망과 향후 세계 무역질서 변화 전망은 어떠한가.
▷한국·뉴질랜드 FTA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는 분명 TPP 참여에 긍정적이다. 미국이 이탈한 게 불운이 됐지만 다자간 협정인 TPP 덕분에 뉴질랜드는 그간 접근성이 떨어졌던 모든 시장에서 최혜국 대우를 받게 됐다. 일본과 양자 간 FTA를 체결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FTA를 체결할지, TPP에 참여할지 선택은 뉴질랜드나 한국의 몫이다. 한국은 매우 개방적이고 무역 위주 경제다. 한국이 다자간 무역협정이나 TPP에서 영원히 비켜서 있다면 그 자체로 이상할 것이다.
▶▶ She is…
1950년 2월 뉴질랜드 북섬 해밀턴에서 4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학 시절 베트남전 반전운동 및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단체활동을 했다.
오클랜드대 정치학 교수를 거쳐 1981년 정계에 입문한 후 1987년 주택 및 환경보호 장관, 1989년 부총리, 1993년 뉴질랜드 노동당 대표 등 뉴질랜드 사상 첫 여성 장관, 부총리, 당수를 역임했다. 1999년 11월 뉴질랜드 총선에서 좌파연합 노동당 당수로 출마해 1999년 12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뉴질랜드 총리를 역임했다. 2009년 3월부터 2017년까지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로서 활동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서 수십 년간 리더십 경험을 살려 국제사회의 각종 현안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