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로 무역전쟁 대응 나선 신흥국들
세계경제 불확실성에 불안 고조
뉴질랜드 등 5개국 줄줄이 내려
한은 금통위서도 소수의견 나와
미·중 무역전쟁 격화로 글로벌 경기 하강 우려가 커지자 신흥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향후 인하를 예고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수요 부진에 무역 전쟁까지 가세하면서 경기전망의 먹구름이 짙어진 데 대한 선제대응 성격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글로벌 경기와 금융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내부에서도 미묘한 입장변화가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소수 의견이 나왔다.
2일 블룸버그 집계와 각국 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인도,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 데 이어 5월엔 뉴질랜드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아이슬란드, 스리랑카가 차례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이들 국가의 중앙은행은 국내외 경제환경의 어려움과 국내 경제성장 둔화를 금리 인하의 이유로 지목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지난달 7일 기준금리를 3%로 0.25%포인트 인하했고, 다음 날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역대 최저 수준인 1.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경제성장 둔화와 제한적인 고용 전망, 세계경제 전망 불확실성을 금리 인하 근거로 설명하면서 향후 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필리핀은 지난달 9일 기준금리를 4.5%로 0.25%포인트 내렸다. 벤저민 디오크노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 31일 블룸버그TV와 한 인터뷰에서 “통화 완화의 여지가 더 있다. 추가 인하를 약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은 지난달 22일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1.8%에서 마이너스(-) 0.4%로 대폭 하향 조정하면서 기준금리를 4%로 0.5%포인트 낮췄다. 스리랑카는 지난달 31일 1년여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다. 인도는 지난 4월 기준금리를 6%로 0.25%포인트 내린 데 이어 오는 6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 금리는 0.25%포인트 인하한 5.75%다.
호주도 아직은 역대 최저인 1.50%에 금리를 붙잡아두고 있지만, 인하가 예고돼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오는 4일 열리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가 0.25% 인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3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75%로 동결했다. 하지만 조동철 금통위원이 금리를 0.25%포인트 내려야 한다고 주장, 소수의견이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금리 인상 이후 회의 때마다 줄곧 만장일치로 동결 결정을 내리다가 나온 소수의견이라는 점에서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아시아 신흥국들이 금리인하에 선제적으로 나서는 배경에는 무역전쟁을 위시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있다. 미국이 일으킨 무역전쟁에 미국 경제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상황이며, 연준의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 상무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올해 1분기 GDP 증가율은 연율 3.1%(잠정치)로 속보치보다 0.1%포인트 낮아졌으며 1분기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은 전월 대비 1.0%로 속보치보다 0.3%포인트 하락했다. 채권시장에서도 경기 우려를 반영하는 미국 국채 장·단기물 금리 역전 현상이 심해졌다.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준 주요 인사들은 통화정책에 ‘인내심’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지만, 인하론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FF 금리선물 시장은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오는 18∼19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가 2∼2.25%로 0.25%포인트 인하될 가능성을 13%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친 인하 전망이 확산해 연말까지 연준 금리가 2∼2.25%로 인하될 가능성은 32%, 1.75∼2%로 내려갈 가능성은 36% 시장에 반영됐으며 1.5∼1.75% 관측도 17%에 달한다.
‘연준 2인자’인 리처드 클라리다 부의장은 30일 한 행사에서 “만약 경기전망이 악화하는 위험을 보게 된다면, 이는 더욱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요구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