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상륙 쿡 선장 동상, 비키니 낙서 수난
“원주민 죽인 부끄러운 역사” 호주 등서 ‘반달리즘’ 벌어져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가로 꼽히는 제임스 쿡(1728~1779) 선장이 뉴질랜드 상륙 250주년을 앞두고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수난을 겪고 있다. 쿡 선장은 서방인으로 처음 뉴질랜드에 상륙(1769년)했고, 3000㎞에 달하는 호주 동부 해안을 처음 탐험(1770년)한 사람이다. 영국 가디언은 “쿡 선장에게 반감을 가진 호주·뉴질랜드 시민들이 그의 동상에 페인트를 붓거나 비키니 수영복 무늬를 그려넣고〈사진〉, 비난 문구를 쓰는 반달리즘(문화유산·예술품 등을 파괴하는 행위)이 벌어지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쿡 선장은 1768~1779년 대서양과 태평양, 베링해와 극지대 등을 탐험해 현재와 거의 같은 수준의 태평양 지도를 완성하는 데 기여한 영국 해군 제독이다. 그의 뉴질랜드 상륙과 호주 동부 해안 탐험은 영국의 호주·뉴질랜드 식민사업의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BBC가 실시한 ’11~20세기 최고 탐험가’ 여론조사에서 쿡 선장은 콜럼버스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뉴질랜드 원주민 출신 주민들은 쿡 선장에 대한 반감이 크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뉴질랜드 기즈번시 노스 아일랜드 타운 의회는 지역 내 티티랑기산 정상에 있는 쿡 선장 동상을 철거해 지역 박물관에 이전하기로 했다. 마오리족 출신 주민들이 동상 철거를 요구하며 끊임없이 시위를 벌인 결과다. 이 지역 마오리족 주민 대변인 닉 투파라는 “쿡의 탐험대가 이곳에 처음 상륙해 원주민 6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 이것이 자랑스러운 역사인가”라며 “쿡이 이 지역 해안 이름을 ‘가난만(Poverty Bay)’이라고 지은 것도 원주민을 열등하게 보는 시선이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호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1879년 시드니 센트럴하이드 공원에 설치된 쿡 선장의 동상에 올해 초 누군가 동상 머리 부분에 분홍색 페인트를 들이부었다. 지난 8월에는 이 동상에 새겨진 ‘쿡 선장이 이 영토(territory)를 처음 발견했다’는 문구를 두고 논란도 벌어졌다. 원주민 출신 언론인과 주민들은 “이 문구는 ‘쿡 선장이 오기 전 호주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이는 원주민을 무시하는 시각이 반영되어 있으니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은 “쿡 선장이 뉴질랜드에 상륙한 지 250주년이 되는 2019년이 다가오면서, 쿡 선장을 ‘부끄러운 역사’로 주장하는 목소리가 두 나라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