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최악 테러 속 빛났다… 30代 여성 총리 ‘공감 리더십’
아던 총리, 신속·단호한 대응 “무슬림은 우리와 함께 있다”
反이민 역풍 미리 차단, 유족 지원 등 슬픔 공유
37세에 최연소 총리 취임과 재직 중 출산, 생후 3개월 된 딸과 작년 9월 뉴욕 유엔총회 동행(同行) 등 갖가지 화제를 뿌렸던 저신다 아던(38) 뉴질랜드 총리가 지난 15일 발생한 뉴질랜드 사상 최악의 테러에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처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17년 10월 총리가 된 이래 아던은 젊은 층과 여성, 진보 진영에서 ‘저신다마니아(Jucindamania)’를 불러일으킨 세계적인 ‘셀렙(celeb)’이었다. 작년 4월엔 시사 잡지 타임이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올랐다. 작년 2월 패션 잡지 보그(Vogue)는 화려한 특집으로 그를 다뤘고, 작년 유엔총회 기간 중엔 미국의 유명 심야 TV쇼에 나오기도 했다.
동시에 국내에선 “화려한 겉치장에 가려진 ‘본질’이 뭐냐”는 비난이 꼬리를 물었다. 작년 7월 뉴질랜드의 경제신뢰지수는 최근 10년간 최저치로 떨어졌다. 그의 노동당 정부가 2028년까지 10만채를 짓겠다는 야심 찬 저소득층 주택 사업은 부처 간 충돌로 인해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아던은 50명 사망, 50명 부상이라는 테러가 발생하자 수시로 범행 전모를 국민에게 즉각 알리고, 추후 대책을 발표하고 무슬림 희생자 유족들과 진심이 담긴 슬픔을 공유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평을 듣는다.
호주 출신 범인의 테러가 발생한 시각은 15일 오후 1시 40분(현지 시각). 아던은 보고를 받자마자 곧 학교·관공서 등을 폐쇄했고, 테러 발생 지역 주민들에게 “매우 위험한 상황이니 외출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뉴질랜드 경찰은 유튜브와 협조해 범인이 게재하는 17분간의 테러 영상들을 계속 삭제했다.
오후 7시 20분 아덴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그때까지 파악된 상황을 그대로 알렸다. 당시로선 범인 외에 공범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피해 규모는 계속 변하고 있었다. 그는 또 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해 무슬림 혐오와 반(反)이민 정서의 역풍(逆風)이 불 가능성을 미리 차단했다. 그는 “희생된 무슬림 이민자들은 뉴질랜드를 집으로 선택했고, 이곳은 그들의 집”이라며 “그들은 바로 우리”라고 선언했다.
다음 날인 16일 오전 9시 아던은 다시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까지 파악된 피해 규모인 사망자 49명과 범인이 쓴 총기, 다른 2명의 용의자에 대한 수사 상황을 공개했다. 아던은 이후 모든 정당의 지도자들과 함께 테러가 발생한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동했다. 검은색 상복(喪服)에 무슬림 스카프인 검은 히잡을 쓴 아던 총리는 일일이 유족을 안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무슬림은 우리’라는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이 어떻게 돕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모든 무슬림 공동체에 공감과 사랑을 보여라”고 조언했다. 아던은 또 사건 발생 24시간이 안 돼 총기단속법을 강화하고 정부가 희생자들의 모든 장례 비용과 유가족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던이 슬픔을 공유하는 사진이 퍼지면서 소셜미디어에선 공감과 진실, 성실성에 기반한 그의 리더십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영국인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렇게 공감할 수 있다는 걸 상상이나 했느냐”며 “아던은 전 세계에 지도자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고 했다. 터키·두바이·이란 등 이슬람권의 소셜미디어 이용자들도 “슬픔에 잠긴 무슬림에게 ‘맞아요, 당신은 우리’라고 분명히 말했다” “포용과 평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며 그를 칭송한다.
아던 총리는 19일 다시 의회 연단에 섰다. 그는 “나는 악명(惡名)이 널리 퍼지길 원하는 테러범의 이름을 결코 부르지 않겠다”며 “범인이 아닌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억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