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무효 주택시장⋯ 쏟아낸 시장 안정화 대책⋯ 관건은 ‘정치’
LTV 등 규제 재도입에도 집값 하락 ‘찔끔’
공급정책 ‘키위빌드’ 사업은 부진
아던 총리 소속 노동당 지지율 하락
영국 매체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7월 뉴질랜드 그레이 린 지역에서는 1920년대 방갈로 스타일에 방은 3개지만 벽은 무너져 사라졌고 이렇다 할 화장실도 없는 데다 잔디는 관리도 되지 않은 집이 경매에서 무려 200만 뉴질랜드달러(한화 약 16억원)가 넘는 가격에 팔렸다.
이는 뉴질랜드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뉴질랜드 부동산 중위가격은 올해 3월 82만6300뉴질랜드달러(약 6억8411만원)로 전년동기대비 24.3% 상승했다. 이후 정부가 다양한 수요 억제책을 내놓긴 했지만 지난 7월 중위가격은 82만6000뉴질랜드달러(약 6억8387만원)로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뉴질랜드 집값이 치솟은 이유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기준금리가 연 0.25%까지 내려가며 저렴한 비용에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데다 코로나19 사태를 상대적으로 잘 통제하며 경제활동 정상화가 빨랐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 실업률은 벌써 4% 수준으로 떨어졌다.
뉴질랜드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10명이 넘은 적이 거의 없다. 이렇게 ‘코로나19 청정국’ 타이틀을 유지하는 동안 저금리 기조는 계속되니 부동산 거래가 활기를 띈 것이다.
또한 미국, 캐나다도 최근 집값 상승이 가파르지만 뉴질랜드에서만 돋보이는 현상은 다주택자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5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 수는 약 1만5000명에 달했다.
모기지 대출서 LTV 재도입⋯ 양도차익 실현도 차단
뉴질랜드 매체 NZ헤럴드 등에 따르면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해 말 본격적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책을 꺼내들었다.
대표적으로 올해 3월부터 모기지 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재도입하기로 했다. 신규 대출의 경우 실거주자와 투자자에 각각 80%, 70%가 적용됐다. 또한 5월부터는 투자자에게만 LTV가 60%로 규제가 더 강화됐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세금 혜택도 줄였다. 실거주가 아닌 투자용 주택 매각에 따른 차익에 부과되는 소득세 면제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한 것이다.
올해 3월 27일 이후 구입한 주택에 이러한 규정을 적용한 것인데 이에 따라 투자자는 주거용 부동산을 10년 이상 보유해야 소득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투자자는 세금 혜택을 받으려면 이전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주택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미다.
2024년까지 1만8000채 공급 추진
공급 대책도 나왔다. 공공건설사업을 통해 주택 8000채를 추가 공급하고, 오는 2024년까지 1만8000채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380만 뉴질랜드달러(약 31억원) 규모의 토지개발기금을 조성해 주택 공급을 늘릴 방침이다.
우려의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9년 뉴질랜드 정부는 주택 10만 채를 공급하겠다며 ‘키위빌드’ 사업을 발표했지만 토지 등 절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비용을 이유로 건설사들이 사업 참여를 꺼리며 지난해 10월 기준 고작 602채 공급에 그쳤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 그의 소속 정당인 노동당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를 잘 통제했다는 국민들의 평가를 받았지만 이제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라는 해결과제에 직면했다.
지난달 뉴질랜드 매체 뉴스허브에 따르면 최근 여론조사에서 노동당 지지율은 9.7%포인트나 떨어진 43%를 기록했다. 이와 달리 제1야당인 국민당은 1.7%포인트 오른 28.7%, 행동당과 녹색당은 각각 4.2%포인트, 8.5%포인트 상승한 11.1%, 8.5%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최근 지지율 상황을 고려하면 아던 총리가 자본소득세와 같은 더 강력한 수요 억제책을 내놓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뉴질랜드 컨설팅업체 인포메트릭스의 브래드 올센 디렉터는 “자본소득세는 정치적인 문제”라며 “투표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부동산 정책은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