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항공사 M&A로 가격인상 없다”지만… 호주·뉴질랜드는 불허
대한항공·아시아나 M&A 독과점 우려…정부 “가격인상 없다”
호주·뉴질랜드 경쟁당국은 “국민 이익에 반한다”며 불허
산업은행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독과점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리한 항공권 가격 인상 등이 없도록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항공업의 특성상 독점 구도 형성에 따라 중장기적으로는 가격인상 등 폐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외국의 경우 이런 이유 때문에 부실 항공사의 지분을 다른 항공사에 매각하는 것을 금지시킨 사례도 있다. 항공업계 및 재계는 두 회사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내 수송객 점유율은 LCC 등 계열사를 합치면 지난해 기준으로 60%가 넘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두 회사 결합 후 시장점유율이 50%가 넘으면 경쟁제한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더욱이 항공업의 경우 막대한 자본투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규진입자가 바로 규모를 키우기 쉽지않아 독과점 구조가 고착되기 쉽다. 대체제가 마땅치 않아 소비자가 “울며 겨자먹기”로 이용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외항사와 경쟁 체제라고 해도 국적 항공사에 대한 서비스 선호도 등이 작용해 소비자가 대응하기 힘든 구조다.
과거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독과점을 우려한 경쟁당국의 판단으로 항공사 간 인수합병이 취소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호주 1위 항공사인 콴타스 항공은 에어뉴질랜드 항공의 지분 22.5%(2억7500만달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인수합병을 추진했다. 에어뉴질랜드 항공은 재정난으로 2001년 파산신고를 하고 뉴질랜드 정부가 지분 약 80%를 인수한 상태였다.
하지만 양국 경쟁당국은 “국민의 이익에 반한다”며 이를 승인하지 않았고, 결국 인수 시도는 좌초했다. 콴타스 항공이 에어뉴질랜드 항공의 지분을 인수할 경우 오세아니아 지역의 항공 노선 독과점이 형성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반경쟁으로 인한 가격인상 등 소비자 후생 저하가 인수합병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능가한다는 의견이다.
당시 뉴질랜드 무역위원회(NZCC)는 “양사 결합에 따른 독과점 폐해는 최소 2억2000만 달러에서 최대 4억3200만 달러로 추정되지만 그에 반해 경제적 효과는 최소 3020만달러에서 최대 4630만달러에 불과하다”며 “양사 결합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보다 독과점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고 했다. 이같은 결정에 따라 에어뉴질랜드 항공은 현재도 뉴질랜드 국영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를 앞둔 공정위는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점유율 등을 놓고 독과점에 따른 경쟁제한성 발생 여부를 살펴보는 동시에 아시아나항공의 회생불가 여부에 대해서도 판단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이 회생불가 판정을 받을 경우에는 경쟁제한성 발생 여부와 상관없이 승인이 가능하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과거 공정위가 현대·기아차 인수합병에 승인 결정을 내려 자동차 독과점 시장을 구축한 것과 같은 전례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기아차는 별개 법인이지만, 합병 후 국내시장 독과점 체제가 형성돼 자동차 가격이 연이어 오르는 등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공정위와 경쟁법 학계에서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대표적인 인수합병 허가 오판 사례로 꼽히는 ‘현·기차’ 합병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공정위가 최근 배달의 민족과 딜리버리 히어로(DH)의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요기요 매각’을 내걸어 사실상의 불허 판단을 내린만큼, 플랫폼 사업보다 진입장벽이 높은 항공산업에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