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대한변호사협회-뉴질랜드사무변호사회 교환연수 프로그램 참가기
1.키아 오라, 뉴질랜드!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공항 창문을 통해서 짙푸른 하늘과 푸른 나무가 보였다. 갑자기 해상도가 높아진 사진을 쳐다보는 것처럼, 내 눈은 시각적인 충격을 맞닥뜨렸다. 쨍-하게 맑은 태양빛과 투명한 공기가 느껴졌고, 마치 시력이 좋아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여기가 바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뉴질랜드구나. 뉴질랜드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자가 보여주는 여유같이, 넉넉하고 느긋한 분위기로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키아 오라(Kia Ora)!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의 언어로 “안녕하세요!”와 같은 뜻인데, 그 경쾌한 발음과 환대의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뉴질랜드의 따뜻한 공기, 지나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길에서 조차, “키아 오라!”가 들리는 듯 했다. 한국을 기준으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이 땅까지 11시간의 비행 끝에, 나는 뉴질랜드와 첫인사를 나눈 것이다.
지금 이 참가기를 작성하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 첫만남 첫 느낌 그대로 뉴질랜드는 연수기간 내내 한결같이 친절하고 솔직하였다. 그 당시에 나는 연수 참가를 위해 뉴질랜드로 떠나면서, 송무에 지친 마음에 한 템포 휴식을 갖는다는 정도의 안이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예상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다양함을 포용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문화, 그리고 얼굴의 겉 표정에서 드러나는 학습된 친절함이 아니라 심장에서 올라오는 따뜻함을 보여주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연수를 풍성하게 해주었다. 무엇으로써 더 충실하게 나의 지나간 시간을 향한 찬사를 보낼 수 있을까! 이 부족하기 그지 없는 글은, 그 시간에 다시 돌아 갈 수 없음을 슬퍼하면서도 그때와 같은 새로운 기회를 한번 더 기대하는 마음으로 작성하였다.
2.오클랜드의 로펌, Hesketh Henry
연수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로펌 ‘헤스켓헨리(Hesketh Henry)’에서 이루어졌다. 이 교환연수는 대한변호사협회&bull뉴질랜드사무변호사회 공동 주최로 이루어진 것인데, 뉴질랜드와 변호사 교환연수를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연수에 참가한 한국변호사는 나와 박문학 변호사, 류정화 변호사 총 3명이었다. 연수 기간은 2018. 2. 19. ~ 3. 2. 2주간 이루어졌으며, 헤스켓헨리 변호사들을 포함하여 다른 여러 곳에 소속된 뉴질랜드 변호사님들과 주제 별 세션을 갖고, 그분들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한국변호사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일정 중간중간 마다 오클랜드의 유명한 장소를 찾아가는 기회도 빠짐없이 마련되어 있었다.
처음 헤스켓헨리를 방문하였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로펌 전면에 펼쳐져 있는 오션뷰 광경이었다. 이 로펌의 빌딩은 오클랜드 와이테마타 항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남태평양해로 이어지는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비록 공식적인 조사를 거치지 못하였지만 조심스럽게 단언하건대, 한국에 있는 로펌 중 이런 오션뷰를 가지고 있는 곳은 없으리라! 이 로펌 빌딩만큼 큰 크루즈선이 항구를 들어오고 정박하고 나가는 것이 보이는 이 놀라운 근무환경은, 절로 부러움이 들 수 밖에 없었다.
▲ 이것이 오클랜드 로펌의 흔한 일상 풍경이다. 헤스켓헨리의 멋진 오션뷰를 보여주는 사진 |
헤스켓헨리의 첫날, 연수 기간 내내 우리를 책임져 주신 이학준 변호사, James Jung 변호사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 뒤 우리는 로펌 전체의 변호사들 및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설립된 지 150년이 넘은 이 로펌은, 한눈에 보아도 따뜻하면서도 합리적인 조직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파티션만으로 분리가 된 채 탁 트인 공간에서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변호사와 여러 직원들이 함께 일을 하는 분위기, 업무시간에 집중적으로 일을 하고 오후 5시면 모두들 소리 없이 퇴근하는 깔끔함, 금요일 오후 5시에는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로펌 카페테리아에 모여 간단한 맥주 파티를 즐긴 뒤 서로 행복한 주말을 빌어주고 헤어지는 모습! 짧은 기간 동안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이 모습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한국에서 흔히 상상할 수 없는 근무 분위기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최소한 내가 느낀 분명한 점은, 이들의 모습에서 초초함이 아닌 여유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곳도 아닌 로펌에서 이런 광경을 볼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주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
3.오클랜드의 어벤져스, 한국변호사들을 위해 뭉치다
2주간의 일정은 정말로 알차게 진행되었다. 세션을 진행 해주신 강연자 한 분 한 분을 모두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 뉴질랜드 법 체계 전반에 대한 소개를 해주신 Peter Triit과 Jame Jung, 뉴질랜드에서 한국의 금감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Financial Markets Authority에서 와 주신 Colin Magee, 뉴질랜드 뿐 아니라 영국, 아랍 지역에서의 해상법 관련 업무경험을 공유해주신 Simon Cartwright, 뉴질랜드에서 직접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직군에서 일한 경험을 알려주신 Simon Papa, 중국과 한국에서 오랜 기간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을 가진 후 뉴질랜드에서 새롭게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Claire Hong, 뉴질랜드의 고용 관련 법률문제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신 Jim Roberts와 Alison Maelzer, 뉴질랜드 세법 분야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을 주신 Neil Russ와 David Perry, 뉴질랜드의 외국인 투자에 관련한 법률 내용을 설명해준 Barret Blaylock, 뉴질랜드의 형사법 체계에 대하여 심도 있는 설명을 해주시고 직접 뉴질랜드 법정 가이드까지 해주신 Joon Yi, 뉴질랜드 특유의 마오리 관련 법에 대하여 설명해준 Taviuni Fonoti, 뉴질랜드 이민법을 설명해주신 Gordon Tian, 뉴질랜드의 금융시장에 대한 설명을 해준 Eric Wei, 뉴질랜드의 건설 관련 분쟁에 대하여 설명해주신 Cristina Bryant, 한국과 뉴질랜드 간의 비즈니스 교류에 대하여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해주신 이학준 변호사님까지… 이렇게 한 분 한 분 이름을 소개하는 것은,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 뉴질랜드 법을 속성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모두가 열정적으로 노력해 주셨다는 점을 이 자리를 빌어 강조하기 위함이고, 오로지 우리 셋을 위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친분을 십분 활용(?)하여 이들을 전부 세션 강연자로 한데 모아준 기획의 달인 James Jung에게 다시 한번 진-하게 감사인사를 하기 위함이다. James, you are the Best!
▲ 우리의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해 주신 일등공신 James Jung 변호사님 (오른쪽에서 2번째) |
뉴질랜드 변호사님들의 각 세션은 모두 다시 듣기 어려운 귀한 강의들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들의 관심을 끈 것은 뉴질랜드 특유의 법제도였는데, 가장 독특하다고 여겨진 것은 뉴질랜드의 환경보호를 위한 강한 규제, 마오리 법의 존재, 뉴질랜드에 대한 외국인투자의 규제, 상해사고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였다. 우선, 뉴질랜드에서 가장 특이하다고 느낀 것은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에 대한 다양한 법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마오리의 땅 및 재산, 문화에 대하여 법에 의한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예 마오리 법원(Maori court)도 따로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소위 ACC라고 하는 뉴질랜드 내의 상해사고 사회보장제도는, 뉴질랜드 영역에서 일어난 모든 상해 사고에 대하여 사고보상공사(Accident Compensation Corporation)가 전부 보상을 해주는 시스템이다. 뉴질랜드의 사고보상법(Accident Compensation Act 2001)에 의하여 운영되는 이 제도는, 뉴질랜드에서 상해를 입은 자는 국적에 상관없이, 사고발생 원인 및 과실 유무와 상관없이 치료비 및 관련 담보 범위를 전부 보상해주는 것이다. 이 제도로 인하여 뉴질랜드에서는 상해 사고와 관련한 소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독특한 것이었다. 덧붙여, 뉴질랜드의 환경보호 법제도는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될 정도로 탁월하며, 뉴질랜드 내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없고 심지어 원자력을 사용하는 배도 인근 해에 들어오지를 못하게 할 정도로 철저하다고 한다. 이러한 특이한 법제도들은, 같은 영연방국가에 속한 나라들과 뉴질랜드를 확연히 구별시켜주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4.코리안 리셉션
연수 기간 동안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하나하나 다 세어 보자면 한도 끝도 없을 정도이지만,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우리를 위한 환영 리셉션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연수 3일차 되는 날인 2018. 2. 21. 오후, 헤스켓헨리에서 우리들을 환영하는 칵테일 리셉션이 열렸다. 오클랜드 각지에서 활동하시는 뉴질랜드 변호사님들이 초청되어 이 자리를 함께 해주셨다. 이학준 변호사님의 진행으로, IPBA(환태평양변호사협회) 회장 Denis McNamara의 환영인사, 그리고 박문학 변호사님의 한국변호사 대표 인사말이 이어졌다. 박문학 변호사님을 비롯하여 3명의 한국대표들은 우리를 초청해준 뉴질랜드 사무변호사회와 헤스켓헨리에게 감사하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 뒤로는 리셉션을 위한 공연으로서, 헤스켓헨리 Richard Chen 변호사의 바이올린 연주와 그에 대한 화답으로 나의 가야금 연주가 있었다.이렇게 공연이 이루어진 것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가야금을 듣고 연주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부족한 실력이지만 몇 년간 가야금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뉴질랜드까지 가서 가야금을 연주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하였다. 연수 첫날 여러 변호사님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가야금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학준 변호사님이 아이디어를 내셔서 뉴질랜드 국원 국악원에 연락하여 악기를 빌리게 된 것이었다. 내가 직접 가야금을 한국에서 가져오지는 못하였지만, 혹시나 여행길에 필요할지 몰라서 챙겨 두었던 한복은 다행히 무대의상이 되었다. 급하게 준비한 공연이었으나, 뉴질랜드 변호사들에게 가야금의 역사와 의미, 민요와 가야금 산조, 가야금 구성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공연을 좋아해주셔서 보람 있었고, 예기치 않게 한국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소개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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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뉴질랜드 사무변호사회(New Zealand Law Society) 방문
우리는 2. 28. 뉴질랜드 사무변호사회 오클랜드 지부를 방문하였다. 뉴질랜드 사무변호사회는 뉴질랜드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변호사들의 이익을 대변함과 동시에 변호사들이 법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갖추도록 규제하고 국민들이 충분한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뉴질랜드 사무변호사회 오클랜드 지부의 대표인 Glenda Macdonald 및 직원들은 우리를 환영해주었고, 뉴질랜드와 한국의 변호사 간 교류에 대하여 여러가지 주제를 두고 담소를 나누었다.
Glenda와 나누었던 흥미로웠던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우리의 연수가 시작된 시기에 뉴질랜드 법조계에서는 로펌 파트너 변호사가 여자 인턴 및 저년차 변호사에게 가한 성추행이 폭로되면서 크게 문제제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검찰 간부로부터 여검사가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폭로되어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얘기했고, 이에 대하여 Glenda는 큰 관심을 보였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확인해본 결과, 뉴질랜드 사무변호사회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제기된 뒤 곧바로 법조계 내 성추행 전담반을 개설하여 대응하겠다고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조인들이 근무환경에서 당한 성추행 피해신고를 온라인 포털사이트를 통해 즉시 접수할 수 있게 하고, 성추행 전용 전화상담서비스를 개설하여 즉각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밝혔다. 뉴질랜드 사무변호사회의 대응은 현 상황에 대한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즉시 사태를 개선시키는 데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앞으로 한국 변호사의 업무환경 개선에 있어서도 이러한 태도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뉴질랜드 Law Society를 방문한 모습. 좌측부터 이학준, 박문학, Glenda Macdonald 대표, 류정화, 나 |
6.끝이 아닌 시작으로!
2주간의 일정은 꽤 길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 덧 연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이학준 변호사님의 가이드로, 우리는 마지막 공식 일정을 오클랜드 인근 와이헤케 섬에서 보냈다. 뉴질랜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참으로 넉넉하고 여유롭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뉴질랜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깨끗하고 청렴한 이미지와, 실제로 뉴질랜드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장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번에 한국과 뉴질랜드의 변호사 교환연수가 처음 이루어진 것은 신기할 정도이다. 여러 방면에 있어서 뉴질랜드는 특히 현재의 한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내가 발견한 그들의 최고 본받을 점은, 그들이 법과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서 눈 앞의 이익이 아니라 넓은 관점, 긴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우선에 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기적인 관점의 법제도가 부패지수 0의 나라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미세먼지 때문에 환기를 못 하고 사는 일상들이 반복되면서, 다시 한번 뉴질랜드 사람들의 장기적 관점에 입각한 원칙주의가 떠올랐다.
이 2주간의 연수를 통해, 나에게 뉴질랜드는 더 이상 먼 나라가 아니게 되었다. 한국 &bull 뉴질랜드 간 변호사 교환연수의 시작이 비록 미약하기는 하였으나 성공적이었으니, 앞으로도 더 많은 뉴질랜드 변호사 연수 및 교류가 지속되지 않을까? 이러한 멋진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도록, 나의 이 글이 아주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