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조기 발효 추진’ 일본, 뉴질랜드 협정 재협상 요구에 또다시 난관 봉착
미국이 빠지면서 한차례 위기를 겪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조기발효를 위해 노력해온 일본이 최근 발생한 뉴질랜드의 정치 상황 변화로 인해 또 한번 암초를 만났다.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의 29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을 비롯한 TPP 참여 국가들은 불과 2주 전 다음달 베트남 다낭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시기에 맞춰 TPP 일반 협정 최종안을 결정한다는 광의적인 합의에 도달한 바 있다. 이를 위해 TPP 11의 각국 협상 대표들은 오는 30일부터 도쿄에서 만나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그간 일본과 함께 미국이 빠진 TPP를 남은 국가들(일명 TPP 11)이라도 계속 협정 체결을 추진해야 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오던 뉴질랜드가 노동당 중심의 새 내각 구성 뒤 협정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에 TPP 조기발효를 위해 속도를 내던 일본은 또 한 번의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이달 26일 노동당이 연정 구성에 성공하면서 새롭게 뉴질랜드 총리가 된 재신다 아던이 TPP 합의 내용을 재협상해 외국인들의 부동산 투자를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던 총리가 끝까지 재협상을 고집할 경우 TPP 협상은 다시 한 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들어서게 된다. 일본측 협상 관계자는 11개국이 이미 TPP의 기존 협정들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기로 합의한 상태이기 때문에 뉴질랜드에만 예외를 허락해줄 경우 협정 자체가 뿌리채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렇게 되자 일본에서는 TPP 참여국에서 뉴질랜드를 아예 빼버리고 10개국만 협정을 진행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일본은 TPP 협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우유의 양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가 TPP의 첫 단계부터 참여한 창립멤버인 탓에 이 방안을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다. 일본의 한 정부 관계자는 “유일한 선택지는 뉴질랜드가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베트남에서도 TPP 협정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 TPP에서 탈퇴하자 TPP 협상 잠정 중단을 원했던 베트남은 TPP 개정을 위한 최근 공식 재협상 요구 목록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소식통에 따르면 이 요구 목록에는 베트남이 이전부터 요구해오던 섬유에 대한 관세 철폐 및 전자상거래 데이터의 국제 전송 금지 철폐 외에 새로운 내용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TPP 조기발효를 추진 중인 일본이 만난 난제는 일본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민당 TPP 대책위원장을 맡아왔던 니시카와 고야(西川公也) 중의원이 지난 22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일본은 TPP 추진을 주도해오던 지도자를 잃었다. 농민 단체의 반발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해왔던 그의 낙마로 일본의 TPP 협상 추진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니시카와 의원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설명했다. 공동 자민당 TPP 대책위원장인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중의원은 지난 8월부터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을 맡게 돼 TPP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농민들의 TPP에 대한 반발을 잘 다스려 협정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게 남겨진 과제는 TPP 뿐만이 아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번주 아시아 순방길에 일본을 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아 미·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 소식통은 이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경제대화에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아소 다로 일본 경제부총리에게 양자간 FTA 체결과 관련해 ‘강한 흥미’를 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은 미·일 FTA 체결시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제한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다 농축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미·일 FTA 체결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미국이 양국간 FTA 체결을 강력하게 요구할 경우 일본으로서는 마냥 거절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