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뉴질랜드의 실험…최저임금·증세·부동산 규제강화
뉴질랜드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20 뉴질랜드 달러(1만6000원)로 올리고, 부자 증세를 단행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도 선포했다. 방역 성공을 넘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스터프 등 현지 언론들은 31일(현지시간) 뉴질랜드의 최저임금은 1일부터 시간당 18.9달러(1만5000원)에서 20달러(1만6000원)로 5.8%포인트 오른다고 보도했다. 저소득 노동자 17만5500명이 인상 혜택을 받게 된다. 최저임금 20달러는 저신다 아던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의 총선 공약이었다. 코로나19 최전선에 있는 필수노동자를 위해 생활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 뉴질랜드 최저임금은 세계에서 5번째로 높다.
아던 정부는 총선 공약대로 소득세 최고세율도 1일부터 39%로 올린다. 이전까지 연 7만달러(5500만원) 이상 소득자에게 최대 33%의 세율을 매기다가 최고 소득세율 적용 구간을 신설했다. 소득 상위 2%에 해당하는 연 소득 18만달러(1억4200만원) 이상 소득자가 세금을 더 낸다. 이번 증세로 올해 회계연도엔 5억5000만달러(4350억원), 2024년엔 6억3400만달러(5010억원)의 세수가 추가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아던 총리는 이번 조치로 “취약계층 지원책을 실질적이고 장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게 됐다”면서 “더 많은 집을 짓고, 의료시스템을 개선하고, 교육·훈련·취업 기회 제공에 투자하는 것을 포함해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밝혔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도 선포했다. 아던 총리는 지난 22일 “투기를 억제하고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부동산 투자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해 코로나19에 대응하려 저금리 정책을 펴자 유휴자금이 부동산에 몰려 투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뉴질랜드 주택 가격은 1년 만에 21.5% 급등했고, 실소유자가 아닌 투자자들의 주택 구입비율은 40%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정부는 부동산 매각 차익에 대한 과세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등 투기 억제책을 시행했다.
이번 조치들을 두고 아던 총리가 총선 대승의 기세를 모아 본격적인 개혁조치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당은 코로나19 방역 성공에 힘입어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전체 국회 의석 120석 중 과반인 64석을 확보했다. 보수 야당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입법 개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던 총리는 총선 개표 직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 뉴질랜드를 더 강하게 재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집권한 아던 총리는 첫 임기 3년간 최저임금을 올리고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늘렸으며 주4일 근무제를 장려했다. 그러나 소득 재분배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지 않아 노동당 집권기에 뉴질랜드 아동 빈곤율과 노숙인 수가 늘어났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노동당은 2030년까지 아동 빈곤율 절반 감소, 기후위기 타개, 더 많은 공공주택 건설, 고소득층 소득세 인상을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보수 제1야당인 국민당은 기업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면서 최저임금 인상과 증세에 반대했다. 주디스 콜린스 국민당 대표는 “코로나19 충격으로 1000여개의 업체가 문을 닫은 지금은 임금 인상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